안녕하세요, 이번에는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입니다.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할 이 영화는 오는 12월 20일 개봉을 확정하고 티저 예고편과 캐릭터 포스터를 공개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노량해전’은 임진왜란 7년 동안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전투이자 종전을 알린 최후의 전투입니다. 단일로는 가장 사상자가 많았던 전투에서 이순신은 마지막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탄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이 영화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업적과 희생을 재현하고자 한 작품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감독의 상상력과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선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는 김윤석입니다. 김윤석은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하나의 시리즈, 세 명의 캐스팅이라는 획기적인 기획에 마지막으로 참여한 배우로, 좁고 깊은 노량 해협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으로 분해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현장감과 함께 그간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선보입니다. 김윤석은 이순신 장군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몸을 만들고, 무술과 태권도를 배웠으며, 실제 배를 타고 해상에서 촬영했다고 합니다. 김윤석은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와 군인으로서의 위엄을 동시에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외에도 이 영화에는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는 물론 안보현, 김성규, 이규형, 이무생, 최덕문, 박명훈, 박훈 그리고 문정희까지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과 젊은 피 배우들이 함께 해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전투를 더욱 성대하게 채울 것으로 기대됩니다.
노량 해전의 역사적 사실
노량 해전은 정유재란 때인 1598년 12월 16일에 이순신과 진린이 이끄는 조명 연합수군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진 해전입니다. 이 전투는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이자 전사한 전투이기도 하며, 이로 인해 임진왜란이 사실상 종전되었습니다.
이 전투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 임진왜란 중 바다에서의 마지막 싸움이었으며, 이순신이 승리와 함께 전사한 해전이다. 개설 임진왜란 중 바다에서의 마지막 싸움이었으며, 이순신이 승리와 함께 전사한 해전이다.
- 일본군은 행주산성에서의 패배와 수군의 잇따른 패배 그리고 명나라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명나라에 휴전을 제의하고 자국으로 철군하였다가 휴전 협상 조건이 서로 맞지 않아 결렬, 1597년 15만 대군을 동원하여 조선에 정유재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하여 전세를 가다듬은 조선 수군이 명량 대첩에서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 도독 유정과 진린이 이끄는 명나라 수군의 참전으로 남부 해상권이 조명 연합군에게 다시 넘어가게 되자, 해상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당한 일본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이듬해인 1598년 음력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까지 사망하고,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조선 주둔 일본군의 수뇌부는 난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패전으로 병사들의 사기는 계속 저하되어 가고 있었고, 조선 수군에게 해상 보급로를 차단당한 채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으며, 결국 일본군은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자국으로의 철군을 결정하고 순천, 사천, 울산 등지로 집결하며 철수를 서둘렀습니다.
이 전투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일본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명나라의 병력과 함께 순천왜성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공격합니다. 이것이 순천 왜교성 전투입니다. 6차례에 걸친 전투에서 큰 전과를 세운 조선 수군은 일단 고금도로 귀환한 후, 고니시 유키나가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키나가의 병력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사천 선진리성에 주둔 중이던 시마즈 요시히로와 고성에 주둔 중이던 다치바나 시게토라, 남해에 주둔 중이던 소 요시토시 등은 고니시 군을 구출하고 본국으로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그해 12월 15일 (음력 11월 18일) 수군 6만여 명과 500여 척의 함선을 이끌고 노량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시마즈 함대가 노량을 통과할 것을 예측한 이순신은 명 수군 도독 진린으로 하여금 남해도 서북쪽 죽도 뒤편에서 일본 수군의 퇴로를 차단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자신의 조선 수군은 일단 봉쇄망을 푼 후, 12월 15일 (음력 11월 18일) 오후 10시경 남해도 서북단인 관음포에 매복시켰습니다. 이튿날인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새벽 4시경, 요시히로 등이 이끄는 일본 함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진입하자 매복해 있던 조선 함선들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이순신 함대가 적선 50여 척을 격파하고 200여 명을 죽이니 적은 수적 우세로 이순신을 포위하려 했지만 오히려 퇴로가 막힌 관음포로 유인당해 일본 측이 포위공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순천왜성 포구를 나선 유키나가는 기회를 잡고 탈출을 시도했고 진린의 명 수군이 합세하여 4시간여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도주하는 일본 함대를 추격하던 이순신은 관음포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다. 단 한 명의 조선수군도 동요되어서는 아니 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으며, 가리포첨사 이영남·낙안군수 방덕룡·초계군수 이언량 흥양현감 고득장 등 명나라 수군 부총병 등자룡 역시 추격 도중 전사하였습니다. 이때 도주하던 150여 척의 일본 함선 중 100여 척을 나포하니 겨우 50여 척의 패전선만이 도주했다고 합니다. 결국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 군은 노량해전의 혼란을 틈타 남해도 남쪽을 지나 퇴각하여 시마즈 군과 함께 일단 부산에 집결, 그 즉시 부산을 포위하고 있던 조선 수군과 명나라 수군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군은 부산왜성을 방어하기 위해 최후의 저항을 벌였으나, 조명 연합군의 엄청난 포화와 돌격에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일본군의 부산왜성 전투에서의 패배는 임진왜란의 종식을 확정 짓는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 통일을 이룬 후 명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발발시킨 것입니다. 이 전쟁은 조선과 일본뿐만 아니라, 명나라와 여진족 등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 조선은 궁궐, 도서, 인구 등을 크게 잃었으며, 일본은 도자기, 음악, 미술 등의 문화를 전수받았습니다.
이 전쟁은 두 차례의 침략으로 나뉘어집니다. 첫 번째 침략은 1592년 5월에 시작되어 1593년 7월에 휴전이 성립되었습니다. 이때 일본군은 16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한반도 전역을 점령하였으나, 조선의 수군과 의병, 그리고 명나라의 원조로 인해 해상 보급로와 육로를 차단당하였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조선 수군은 23차례의 해전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일본 수군을 크게 상처 입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는 1592년 8월에 벌어진 명량 대첩으로,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거북선과 120여 척의 판옥선으로 일본 수군 333척을 격파하였습니다.
두 번째 침략은 1597년 6월에 시작되어 1598년 12월에 종료되었습니다. 이때 일본군은 14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남부 해안을 공격하였으나, 조선의 수군과 육군, 그리고 명나라의 원조로 인해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조선 수군을 재편성하고, 일본 수군의 퇴로를 차단하였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는 1598년 12월에 벌어진 노량 해전으로,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거북선과 63척의 판옥선으로 일본 수군 500여 척을 격파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으나, 그의 부하들은 그의 죽음을 숨기고 전투를 계속 이끌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은 남부 해상권을 완전히 잃었으며, 조선과 명나라의 해상 포위망에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전쟁입니다. 조선은 이 전쟁을 통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방력과 국민의식을 강화하였습니다. 일본은 이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의 정세와 문화를 배우고, 국제적인 시야를 넓혔습니다. 또한 이 전쟁은 명나라와 여진족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병자호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상이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이 영화는 12월 20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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